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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리뷰와 감독, 배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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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립워커(2018) 리뷰-최소한의 정의

감독
필리페 멜로 (Filipe Melo)
배우
Greg Lucey, Durant Mcleod, Joy Green
시놉시스
A man crosses two states for a slice of apple pie.
영화감상
https://bit.ly/3ciellc

슬립워커(2018) 리뷰-최소한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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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에서 범죄가 일어났다면, 그곳에선 애초부터 정의가 없는 것이다.” - 플라톤 

 

오프닝부터 정통적인 서부극 같았다. 여명이 밝아오는 붉은색의 광활한 황무지로 시작해 그 황무지를 자동차로 무심히 횡단하는 외로운 늙은 보안관 주인공의 등장은 영락없는 서부극의 오프닝이자 그 장르의 전통이다. 심지어 기타로 연주하는 느린 포크송마저 진부하리만큼 흐른다. 이제 그는 그토록 찾던 악인을 찾아 추격해 고독에 대한 우수어린 대사를 읊으며 총싸움할 일만 앞뒀을 것이다. 그런데 이 늙은 보안관이 찾는 것은 특이하다


범죄가 들끓는 위기에 처한 마을이 아니요, 높은 현상금이 걸린 현상 수배자도 아니요, 마적떼도, 숨겨진 재물을 찾는 것도 역시 아니다. 그가 찾는 것은 다름 아닌 애플파이다. 맨 처음 보안관은 잠시 머문 주유소 주인으로부터 돌로레스 부인이라는 인물을 찾는다. 주유소 주인은 돌로레스 부인이 마을을 떠 난지 오래라며 왜 찾느냐고 묻는다. 마침 보안관이 물으니 큰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스레 물어보는 주인. 그러나 보안관은 부인이 만든 애플파이가 명물이라 찾는다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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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이 임무로서 바쁠 보안관이 경찰차를 타고 애플파이를 찾으러 왔다는 대답에 순간 황당 해하는 주유소 주인. 관객들 역시 그런 그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다. 보안관인 그가 한낮 애플파이를 찾으러 이 먼 거리를 횡단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유소 주인의 안내에 따라 보안관은 돌로레스 부인이 일한다는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에 도착한 보안관은 들어가자마자 애플파이를 달라 말한다. 그 말에 당연 돌로레스 부인을 찾으러 왔음을 눈치 챈 식당주인은 다란 파이도 많으니 그를 주문하라 유도한다. 그러나 보안관은 계속해서 애플파이를 원한다. 결국 식당주인은 주방에서 일하는 돌로레스 부인과 따로 얘기해보고, 부인은 주방 일로 바빠 다른 요리를 불가하다고 말해준다. 물론 그는 보안관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부인의 의사를 돌려 전달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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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보안관은 식당 일이 끝날 때까지 얼마든 기다려도 좋으니 계속 파이를 원한다며 고집한다. 결국 두 손 다 들은 식당 주인은 보안관은 식당에 앉혀놓고 운영이 끝날 때까지 그를 지켜본다. 보안관은 마음이 여유로운 듯 편안한 표정일 뿐이다. 마침내 식당은 운영을 마쳐 문을 닫고 드디어 부인이 주방에서 나온다. 돌로레스 부인은 자신의 애플파이는 특별한 것도 아닌데 왜 자기 것을 원하냐며 따진다. 그 분노를 조용히 듣던 보안관은 그저 약속을 했다는 답을 한다. 그 한마디에 부인은 눈치를 챘는지 표정이 변하더니, 바로 밤새도록 파이를 구워 보안관에게 건네준자. 드디어 파이를 받아 낸 보안관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교도소다. 그리고 그곳에는 곧 사형을 앞둔 한 흑인 청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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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결말까지 보면 보안관의 고집이자 겉으로 소박해 보이는 약속은 의아해 보이나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보안관, 즉 경찰이라는 직업은 질서를 지키며 민중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줌을 일을 넘어 의무로 삼는 직업이다. 그러므로 민원을 접수하는 작은 일부터 목숨을 걸고 범죄와 맞서 싸우는 큰일까지 가리지 않고 모두 당연시 여기며 수행해간다


다시 말하자면 정의를 실천하는 직업인 셈이다. 그리고 여러 영화에 등장했던 것처럼, 척박한 황무지에서 법 대신해 목숨 걸고 정의를 실천해내 질서를 지키는 것이 서부영화 속 보안관들의 임무이자 운명이 된다. 당연히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자 위험한 싸움에 맞서는 그 용기도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이때 이 순간 어쩌면 다음과 같은 새로운 질문이 스칠 것이다. 그러는 것만이 정의를 지키는 것인가? 과연 위악스러운 총잡이에게나 마적 떼에게 무조건으로 총질을 해 사살하고 그 황량하고 배고픈 사회 내에 아무도 예외가 될 수 없도록 압력을 주듯 유지하는 게 정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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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의의 심판극으로서 대표화 된 서부극은 영화사에서 항상 뜨거운 감자가 되어 왔다. 미국 건국 및 개척의 신화로서 창조되었지만 그 과정에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흑인 노예제, 동양인 철도노동 착취에 대해서는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무시되어지고 백인들만 영웅시되어 졌다. 그렇다고 백인들끼리라도 서부가 천국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아직 헌법의 손이 닿지 못했을 때라 잔혹한 총싸움, 범죄 부정부패까지 들끓던 살벌한 무법지대였다. 그래서 그 속에서 힘없던 노동자, 농민, 그리고 여성은 매일매일 그 목숨을 겨우 부지하거나 그 부패에 패착하며 버텨 살았다. 그러다 물론 20세기 중반 이 역사에 대해 제대로 된 재현을 통하여 성찰하고자 한 새로운 감독진들 덕에 <수색자>, <늑대와 춤을>, <셰인>과 같은 수정주의 웨스턴이 등장했고, 근래에 들어 현대나 가상의 미래를 배경 삼는 자유로운 장르-혼합 형식을 통하여 복합적인 역사의식을 내비추는 <아웃랜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윈드 리버> 네오-웨스턴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번 <슬립워커>도 역시 수정주의, 네오-웨스턴의 양상을 띄는 작품이다. 영화 속 보안관은 대단한 정의나 자기 명예욕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보안관이라는 직업상의 신념으로서 약속을 지키려는 것 그 뿐이다. 그러나 그 작은 약속 하나가 신념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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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란 서로가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에게 그 이상 이하 없이 지는 책임감이다. 동등하게 한 쪽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책임을 진다는 건 곧 정의가 추구하던 것 아닌가? 그렇다면 정의란 또 무엇인가? 자연스레 인류의 역사에서, 특히 가장 잔혹한 2차 세계대전 직후 서구에서는 이 정의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논의가 오갔다. 미국의 정치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최소한의 수혜자로 최대 행복 추구라는 명제를 내세워, 소외계층 등 특혜를 주어야 하는 집단을 최소한으로 줄여 가나며 다양한 계층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나아가는 것을 정의의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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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무도한 악당과 결투를 벌여 승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작은 일부터 시작해 사회 모두를 만족시켜 주어가는 일이야 말로 진정한 정의의 정신인 셈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에게 똑같은 조건으로 맞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 성향, 출신이 각기 다른 개개인들에게 조금씩 다르게 맞춰주면서 그 만족을 모두로 향해 확장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평등하다고 같은 조건으로 맞추고 마는 것은 새로운 차별, 불의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의 배경은 80년대다. 주인공이 황무지를 지나는 오프닝 다음 밤을 지내고자 머문 모텔 TV에서 레이건 대통령의 연설이 생방송된다. 그것도 십자군 정신으로 미국을 재건한다며 법인세 축소를 선언한 유명한 연설이다.


 레이건은 80년대 미국을 경제위기로부터 회복시킨 것으로 평가된 대통령이었으나, 지독한 보수주의에 기반하여 복지정책과 인종 및 소수자 이슈에는 철저히 묵인해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결국 영화는 가장 중요한 권력이 영화 마지막 사형수와 같은 흑인이자 범죄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수 있는 사회적 약자에게 최소한의 정의마저 포기했을 때 그나마 그를 지키고자 하는 보안관의 (신념상)최후의 임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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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에서 사형수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파이를, 영화제목처럼 잠 못 이룬듯 미친듯이 홀린 것(sleepwalk) 같이, 먼 길 걸어 가져다 주는 보안관의 약속은 결코 작은 일이나 작은 일이 아닌 셈이다. 질서를 유치하는 데서부터 불리한 약자에게 가능한 기본을 베풀어 주는 것이 존 롤스부터가 주장한 정의의 정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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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큰 범죄로 죽어야 할 사형수라도 모든 것을 잃게 되는 한 개인으로서 최소한의 기본권, 소망을 들어주어 주는 보안관은 그 약속으로서 자신의 직업의 증명을 보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최소한의 정의로서, ‘진정한 정의를 실천해냈다. 그를 무시한다면 과연 정의를 지킨다는 보안관으로서 무슨 신념이 남을 수 있을까? 그것이 감독이 영화로 주장 하고자한 철학일 것이다. 그런 자칫 무게감의 균형이 흐려질 수 있을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낭만적으로 연출하여 집중을 계속 유도한 연출 솜씨가 일품인 작품이었다


또 정의에 대한 그 묵직한 주제를 우화적으로 표현해 낸 스토리텔링과 함께 서부극 특유의 서정적인 롱샷 영상과 음악으로 분위기를 맞춰 주기까지 한 필라페 멜로 감독 재주가 돋보였다. 동시에 과묵하면서 여유로운 분위기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인간적인 보안관을 훌륭히 연기한 주연배우 그렉 루시의 조용한 연기도 일품이었다. 이들 역시 곧 헐리우드 메이져 영화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고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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