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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리뷰와 감독, 배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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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2015)

감독
신제민 (Jemin Shin)
배우
초아 이정현 인희 문소율 나잉 박진희 곽선생
시놉시스
수업 중인 신교수가 천식으로 쓰러진다. 조교인 초아는 호흡기를 가지러 가지만 막무가내로 심부름을 시키는 선배 진희를 거절 하지 못한다. 진희는 초아에게 본인이 신교수에게 호흡기를 가져다주겠다고 한다.
영화감상
https://bit.ly/3fHKFQ9

Stay! (2015)

몇 년 전, 이 영화를 처음 봤던 때가 생각난다. 15분의 짧은 영화 감상 끝에 느낀 것은, 영화의 흡입력이 대단히 좋고, 극이 매우 유려하게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씬이 영화의 문을 닫는 순간,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껏 얼빠진 얼굴을 하고 단말마와 같은 탄식을 내뱉었던 것 같다.

그 때 느낀 그 감정이, 당시에는 무엇인지 잘 몰랐다. 당시 눈여겨봤던 건 ‘가만히 있으라.’라는 한 줄의 대사였고, 영화의 제작 시기였다. 2014년 4월 16일, 어언 6년의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여전히 그 때를 잊지 못한다. 한 나라 전체를 애통하게 만들었던 비극적인 사건 뒤에 오랜 기간 다루어진 화두는 아마 이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문제점이었을 것이다. 자연스레 이 영화의 출발점에는 그 한 마디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영 틀린 생각은 아니라고 믿는다. 다만 약 2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보게 된 이 영화에서, 당시에 음미하지 못했던, 어떤 새로운 역학관계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는 ‘극이 매우 유려하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분명, 교수가 쓰러졌다. 관객들은 빠르게 디제시스와 결합된다. 흥미로운 사건이 곧바로 펼쳐지고, 이제부터 일어날 일에 대해 강한 흥미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우리가 생각한 방향과 영 다르게 흘러간다. 영화는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까먹게 만든다. 2016년의 어느 날,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한 영화의 명대사가 떠오른다면, 바로 그거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가장 먼저 하게 될 생각. ‘뭣이 중헌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잠시, 관객들은 주인공이 느끼게 되는 감정의 골을 그대로 느끼게 되면서 순식간에 핀트가 어긋나게 된다.

주인공이 대면하는 상황들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갈등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공감하며 보는 관객들에게는 차마 마주하기 힘든 갈등이다. 너무도 현실적인 이 선배와 후배 간의 위계 질서 속의 갈등 상황은, 불편한 감정을 여과없이 느끼게 함과 동시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강렬한 자극이 된다. 특히 ‘분노’의 감정을 활용한 것이 뛰어난 선택이었다고 본다. 우리는 모두 삶의 어느 한 시점에 너무나도 화나는 일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이성이 끊어지고, 결국 시야가 극단적으로 좁아지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공감 가능한 갈등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무엇인가? 관객들은 이 감정의 골을 경험하며 교수가 쓰러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기는 하나, 점차 그 사실이 퇴색된다.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에서 초반에 주인공이 돈을 훔친 사건은 사실상 극과 큰 관계 없는 맥거핀이었던 것처럼, 관객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앞의 사건의 색채를 옅게 만들고 만다. 인간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그 일이 얼마나 크고 중요하건, 깊게 신경쓰지 않는 성향을 보인다. 이 ‘씨x’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선배가 선물한 썩어빠진 감정이 피어오른 순간, 이미 중요한 건 주인공 자신의 기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은 교수가 쓰러진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가만히 있으라 했다고 정말로 가만히 있는 그들의 모습. 아무도 나설 생각을 하지 않으며, 심지어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거나, 자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역시 보인다. ‘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Not my business’,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참 좋은 한 마디 아닌가? 우리는 어떤 막중한 ‘책임’과 관련된 일이 발생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그 무거운 짐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애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해주면, 사실상 속으로 웃고 있지 않을 이가 있을까? 




 

사람의 목숨이 오갈지도 모르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않는 이 상황.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후배가 주인공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다. 하지만 타이밍이 영 좋지 않다. 주인공은 이미 선배와의 갈등으로 인해 잔뜩 열 받아 있는 상황이고, 전화를 건 후배는 별 거 아닌 것으로 꾸지람을 듣는다. 상스러운 욕설이 가득 담긴 날카로운 말들은 아니지만, 충분히 원색적인 비난을 마주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고, 후배는 순식간에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그것을 받아낸다.
이제, 새로운 감정의 골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주체는 후배이다. 통화가 끝난 후,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차는 후배의 모습에서 그 사실이 잘 드러난다. 후배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고도, 정말 가만히 있던 지나치게 수동적인 이들 사이에서 나름의 생각을 하여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자신의 선배와 갈등을 통해 진짜 중요한 것을 잊었던 주인공처럼, 후배에게 있어서도 더 이상 교수의 건강 문제에 대해 물어본 사실은 중요하지 않게 되어 버린다. 후배는 지금, 기분이 더럽다. 마치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한 차례 후배에게 화풀이를 한 주인공은 교수에게 된통 혼나고 있는 선배를 발견한다. 주인공은 그 장면을 오래 지켜본다. 몸을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열린 문 너머로, 그 장면을 똑바로 응시한다. 주인공은 속이 후련했을 것이다. 나를 우습게 만든 선배가, 시원하게 한 방 먹었으니까. 인간이라면 그 순간에 모두 ‘통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주인공의 눈을 멀게 했던 그 지독한 감정이 사라지자, 그제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떠오른다. 교수의 호흡기를 찾아 뛰는 주인공은 이내 교실에 도착하지만, 늦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씩씩 화를 낸다. ‘지금까지 뭐한 거’냐면서. 하지만 교실 안 학생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수업을 끝마치는 종이 울리자. 그대로 자리를 뜬다.

하지만 후배는 남아있다. 교실에 남은 마지막 한 명의 학생이 된다. 주인공을 향한 걱정 때문일까? 그럴 리가 없다. 당한 게 있으니까. 이제 한 방 먹여 줄 차례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셔서.’

이제 주인공은, 마치 자신이 바라보며 통쾌해 하던 선배의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유유히 교실을 빠져나가는 후배. 남겨진 주인공의 모습은, 가엾다기보다는 미련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몇 년 전에 봤던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 ‘가만히 있으라고 하셔서.’야말로 필자를 탄식하게 만들었던 순간이었다. 다만 그 탄식 이후에 왜 그렇게 웃음이 났을까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 감정은 아무래도 블랙 코미디 장르에서 느끼는 감정과 결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완벽한 타인> 이라는 영화를 생각해보라. 우리는 그 영화에서 인간의 본성에서 발견할 수 있는 ‘환멸’과 ‘냉소’, 그로부터 나오는 씁쓸한 헛웃음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영화 속의 상황 역시, ‘코미디가 따로 없지 않는가?’

이 짧은 단편영화는 감히 영화적 테크닉과 극의 구성 분석, 이런 것들은 잠시 멀리 해두고 관람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많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라는 대상에 공감하면서 영화를 보지만, 대개는 큰 사건의 줄기를 따라가고, 영화에 대한 평을 할 때도, 그 영화가 얼마나 잘 만들어진 영화인지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영화의 기술과 이론들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온전히 인물들만 따라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인물과 완전히 동화되어, 순간순간의 감정에 솔직하게, 있는 힘을 다해 물들어버리라고. 그렇다면 영화의 끝에서,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가상의 이야기를 보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격렬한 어떤 감정과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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