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한 폭풍, 그 이름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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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곡 Lullaby> - 고요한 폭풍, 그 이름은 ‘가족’

감독
허서양 (Stanley Xu Ruiyang)
배우
Loh Heng Joo, Leighton Lee
시놉시스
그녀의 유일한 위로는 그녀의 아기 손자입니다. In a typical Singaporean family of three, life is well and comfortable. Unbeknownst to them, the forgotten fourth member is feeling neglected and alone. The only comfort she finds lies in her grandson.
리뷰
이동준

고요한 폭풍, 그 이름은 ‘가족’

<괴물>부터 <국제시장>까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가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아시아권 영화들에서 ‘가족’은 주된 소재이자 중요한 배경이 되어 등장해 왔다. 그 이야기들이 <음식남녀>부터 <몬순 웨딩>처럼 따뜻하고 희극적이며 아름답기도 하지만, 때론 <잔 다라>나 <기생충>같이 비극을 초래하는 끔찍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혹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처럼 그 둘 사이 경계를 오가며 현실적인 가족의 초상을 보여주어 그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실험적인 작품들도 있다. 이런 만큼 100년이 넘는 영화사 동안 가족에 대한 영화, 일명 가족영화가 많이 만들어진 만큼, 장단편으로든 이를 색다른 주제로 신선하게 연출해내기가 쉽지가 않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 싱가폴 감독 스텐리 수(Stanley Xu)의 <요람곡>는 전통적이면서도 자신만의 특색을 지닌 가족영화의 신세대적 모범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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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화권 소도시의 가정집. 두 부부가 출근하고 집에는 어린 아들만 남아 있다. 조용한 집에서 아들을 봐줄 사람은 가족의 시어머니 할머니 뿐. 점심시간이 되고 둘은 식사를 하지만, 유아기 아이들이 그렇듯, 손자는 바로 죽을 먹기 싫어한다. 할머니는 화내지 않고 초콜릿을 꺼내 보여준다. 초콜릿은 먹고 싶다 하는 손자. 할머니는 죽을 다 먹으면 초콜릿을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손자는 죽을 먹겠다 하는 손자. 막상 먹고나니 맛이 있다. 그랬더니 먹기 싫어질 때까지 줄 수 있다는 할머니. 식사 후 침대 위에 누워서 앨범을 읽고 있는 할머니. 곧 손자가 심심한지 다가오고 할머니는 심심한 손자를 위해 앨범 속 사진들을 보여주며 옛날 이야기를 해준다. 어릴 적 모험심이 많았던 손자의 아버지이자 할머니의 아들. 한 번은 냇가로 수영을 나갔다가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다이빙을 시도해 할머니를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 곧 할머니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손자에게 아버지의 그런 무모함을 배우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럼에도 그 시절이 그리운 듯 편안한 목소리와 얼굴로 충고를 전하기에 그마저 푸근한 옛날이야기 중 하나처럼 들린다. 그 사이 손자는 잠이 들고, 할머니는 잠든 손자를 다정하게 도닥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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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귀가한 아버지. 아버지는 어머니 할머니에게 연말 쯤에 홍콩으로 이주를 가자고 제안한다. 그에 할머니는 별 말 없이 홍콩으로 떠나려면 비행기 표를 일찍 미리 예매해 놔야 싸다고 답한다. 그에 걱정 말라고 미리 준비해 놓겠다는 아들. 이이서 할머니는 손자도 함께 가냐고 묻는다. 당연히 가족 모두가 떠나니 당연하다고 대답을 받는다. 별 갈등 없는 평온한 대화. 그러나 정작 둘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베개를 얼굴까지 파 묻으며 꽉 안은 채 잠든 손자만 보여주어 왠지 건조하게 느껴진다. 이어서 몸이 안 좋아 잠들고 있는 할머니. 그에 걱정되는 손자가 할머니에게 먹을 걸 주겠다고 다가온다. 할머니에게 이전 점심을 먹고 받은 초콜릿을 먹여주는 손자. 할머니는 그저 고맙다며 조용히 받아 먹는다. 곧 손자는 다시 같이 놀러 나가고 싶으니 금방 나으라고 걱정스레 말한다. 그에 할머니는 손자를 기특하게 생각하며 곧 나을 거라 답해준다. 곧 다시 조용해진 집 안. 거실 한 가운데서 손자는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 그 사이 할머니가 일어나 소리 없이 거실로 걸아 나와 안락의자에 앉아 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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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겉보기로는 조용하고 별 극적인 사건이 없다. 그저 할머니와 손자 간의 정감 어린 대화 장면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안한 기운이 계속 느껴진다. 아마 집 안에서 경제 등 실질적인 활동을 이끌어가는 아이 부모님의 얼굴이 한 번도 등장하기 않기 때문일 거다. 심지어 대사들도 출근 준비를 하는 통상적인 대화나 홍콩으로 이주하기 위해 준비하자는 대화뿐이다. 할머니와 손자 간 대화와도 비교하면 딱딱할 뿐이다. 그렇기에 별 갈등도 싸움도 보이지 않는 이 가족은 초반부터 그 인간미 부족에 불안 불안해 보인다. 사실 애초 부부 모두 맞벌이로 바빠 어린 아들과 나약한 할머니 둘만 남겨지곤 한다는 점부터 이 집안의 냉냉한 분위기는 이미 있었다. 여기에 고향을 떠나 홍콩으로 이주하자고 할 때도 어머니로서 할머니는 아들의 권유에 좋다고 하지만, 앨범을 보면서 좋았든 싫었든 고향에서 보내온 시절들을 그리워하고 애착을 갖던 씬에서 바로 이어지다보니, 왠지 모르게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느껴지는 듯 하다. 대놓고 밝히진 않지만, 가족들 간의 심리적 갈등이 시작되고 있는 거다. 사실 가족이라는 구성체는, 특히 동양권에서부터, 평온하고 아름다우며 항상 자신의 편이 되 주는 존재로 여겨져 왔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각기 개인들의 집합체인지라 서로 간의 충돌과 갈등이 항상 끊이지 않는 귀찮은 존재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역시 안전한 곳이 아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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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생각해보자면, 가족이란 곧 안전한 울타리이며, 언제든 재앙이 불어 닥칠 수 있는 ‘고요한 폭풍’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 사이에서 불어오는 폭풍 전야 혹은 이미 불어 닥친 조용한 폭풍을 암시하듯, 영화 내내 바람이 부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빨래부터 이불, 식탁보가 바깥 바람에 흩날리고 천장의 환풍 팬이 부는 장면들은 일상적인 풍경임에도 평온하던 순간에 불어 닥치니 긴장이 유발된다. 이 인서트들은 그냥 우연히 카메라에 잡혀 넣은 것이 아닌 의도적인 연출이다. 실제로 정지된 풍경에서 미세하더라도 움직임이 잡히며 그 속의 리듬이 바뀌며 불안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효과에 바람과 같이 자연 만큼이나 좋은 효과는 없다. 그렇기에 이는 그 냥이 아닌 영리한 연출로 돌아온다.


영화는 과연 마지막에 할머니가 그저 잠이 든 것인지 세상을 떠난 것인지, 그것이 설마 손자가 초콜릿 때문인지 열가지 상상이 들게 만드는 수수께끼같은 결말로 막을 내린다. 결국 영화는 계속 보여주지 않는 어른들의 얼굴부터 열린 결말까지로 가정 내 평온함 속의 불안감을 그려내었다. 어찌됐건 간에 이 가정 속에서 늙고 나약해진 할머니는 애초부터 뿌리 뽑힐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할머니에게, 또 관객에게 평온함이 되었던 순간은 착한 손자와 함께 있는 순간이다. 동심과 늙은 모정이라는 두 약해 보이는 존재가 이 폭풍을 잠재울 자장가-요람곡이 되어준다. 이러한 가족 내 조용한 불안과 잠시간 동안 잠들 것 같은 작은 안정감 간의 교차가 사실상 이 작품의 주제일 것이다.


얼핏 <동경이야기>와 같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나 <하나 그리고 둘> 같은 '에드워드 양'의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야스지로의 다다미 샷 같은 가구 너머로 바닥에 앉거나 누워있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구도로 주로 촬영 되있고 긴 호흡으로 편집되어 있다. 또한 등장하는 인물들도 정면 얼굴보다는 옆이나 뒷모습을 비추기도 하고 횡이나 종으로 누워있는 모습으로 포착하기도 한다. 이러한 영상 스타일은 사물이나 인물을 정면으로 피사체로서 잡는 서양식, 헐리우드식 연출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이미지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더라도 피사체가 아닌 정말 살아있는 인간 그대로 느껴진다. 이런 아시아권에서 익숙한 영상으로 그 문화권에서 중요한 ‘가족’이라는 테마를 차분하면서도 냉담히 관찰한 스탠리 수 감독의 영상 스타일은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다. 앞서 표현 한대로, 오즈 야스지로나 에드워드 양, 심지어 리안이나 허우샤오 센 감독을 연상시키는 영상 스타일은 이제 현대 아시아 영화계에서도 점차 사라져 가는 스타일이기에, 그를 유지하면서 신선한 현대적 감각과 테마를 얹으려는 시도를 한 이 단편영화는 21세기 아시아 영화계에서 충분히 가치 있으며 결코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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