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Twenty, Húsz (2018), 망자의 여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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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Twenty, Húsz (2018), 망자의 여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감독
안나 코룸 (Korom Anna)
배우
Maxime Machaidze, Nata Beradze, Zura Begalishvili
시놉시스
An old man on the border of life and death must atone for a sin he thought he could escape from.
리뷰
양혜린 Hyerin Yang

망자의 여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주하는 지난 날의 진실과 과오들.

망자의 여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만나는 지난 날의 진실과 과오들.


​  안개 낀 눈 밭을 맨 발로 걷는 한 늙은 남자의 걸음과 스치는 과거 씬 들이 혼재되어 보여질 때 3초 정도 고민한다. '헝가리 버젼의 <신과 함께>'인가? 망자가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놓은 다리를 맨발로 건너는 그 순간에 신비한 눈동자를 지닌 어린 소녀가 나타난다.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해도 낯설지 않을 만큼 설 숲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어울리게 요정같이 등장해 남자에게 말을 건다. '맨발이네요?', '신발을 잃어버렸어.', '거짓말', '돌아가요!'



어디로 돌아가라는 걸까? 맨발(Bare foot)과 신발이 상징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발이 더러워졌어요.', '벗으렴.'

 내 또래의 취준생들이 매일 '이력서' 쓰고 있다. 書 (밟을 리, 지날 력, 글 서). 지난 날 밟아 온 길을 보여주는 글이라는 의미다. 발자취라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사용한다. 우리는 生의 시간을 종종 이렇게 발걸음에 비유하곤 한다. 헝가리 영화 <스물 Twenty, Húsz (2018)>는 이러한 메타포 (Metaphor)를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카메라가 시종일관 더러워진 구두를 신은 발과 맨 발을 비추며 보여준다. 신발이 지난 날 걸어온 인생이라면 얼룩은 Sin(죄)이다. 남자의 꿈 속 장면으로 등장하는 젊은 날의 장난 같은 섹스와 임신한 여자를 버리고 맨발로 도망쳤던 일이 파노라마 처럼 스쳐 지나간다. 꿈 속에서 남자는 만삭인 그녀의 배를 쇠막대기로 마구 친다. 꿈이 깨자 남자는 두려움에 그 곳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그러자 늙은 여자가 말을 건다. '맨 발인데? (그러고 어딜가?)' 남자는 신발이 없어서 죽음의 강을 건널 수 없다.



Abortion. 옛 시대의 낙태에 대하여. . . 히스토리 속에 감추어졌던 자기고백적 허스토리


​ 남자가 도망치고, 홀로 남겨졌던 여자의 자기 고백적 이야기. 여자는 그가 모르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직하게 읊조린다. 배가 자꾸 불러오자 양잿물을 마시고, 끔찍한 양의 식초를 들이켜고, 어떤 여자는 화약을 먹으라고 했다. 산파는 바늘로 여자의 배를 찔렀다. 이야기를 마친 노파가 그에게 소리친다.

'어서 나를 찍어! 뭘 주저하는 거니?' ​청년의 모습을 한 '나'가 셔터를 누르자 마침내 남자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도 죽음의 땅도 아닌 그 중간 어느 세계(연옥)에서 지난 날의 죄를 마주하고 '신발'을 찾아 죽음의 강을 건넌다. 아니, 정확히는 '신발(sin, 죄, 진실)'을 찾고, 그 신발을 품에 안은 그녀를 뒤에 그림자처럼 데리고 어린 소녀를 따라 그 강을 건넌다.

 메세지와 상징이 강한 영화는 기록으로서의 영화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작년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상은 '당신들 영화가 받았어야 한다며' 겸손히 스포트라이트를 돌린 영화 <불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극장에서 봤을 때 옛 유럽 세계에서 여성들을 낙태 하던 방식이 스크린에 그대로 재현 되는 장면을 보고 눈을 감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다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같은 여성의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나의 내면이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 나를 대입하여 시뮬레이션 하는 데 1/10초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문학 시간에 글로 배운 여성문학과 영화로 보는 역사는 시신경에 파고드는 자극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요즘은 낙태를 하네 마네, 개인의 자유와 신념을 놓고, 법 폐지 문제로 싸우는데... 그 시절에는 목숨이 달린 문제 였다. 잘 몰랐다. 그래서 이렇게 현대에 와서라도 편집되어 재현되는 '그 이야기들이' 오감으로 듣고 보는 역사의 한 조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아니면 우리는 그 시절 허스토리를 알 수 없다. 혹자는 '영화는 오락물인데 왜 여가시간에 마저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봐야 하나'하고 말할 수도 있다. 맞는 소리다. 팝콘 먹으면서 볼 영화는 아니니까. 하지만... 마지막 컷, 그 눈동자를 마주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나이든 어느 여자가 한 많은 눈으로 앞을 응시하면서 20을 세자, 죽음의 강을 지키는 정령같은 소녀가 손을 그녀의 입에 댄다. 그러자 그녀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숨을 거둔다. Húsz 호운스. 소녀가 속삭이듯이, 마지막으로 (그녀를 대신해) 20 을 말한다. 눈 감고 20을 세고 있어봐! 하고 도망갔던 남자를 기다리던 젊은 날, 그녀의 시간이 그제서야 멈춘다. 우리는 이런 시간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침묵 속에 묻혀있던 허스토리를 마주하고, 들어야 한다.이런 영화들도 세상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기억하기 위한 기록으로서.



​남자의 죄의식의 구현인가? vs 침묵속에 감춰진 한중록인가?


 방금 전까지 그룹콜을 하며 친구 두명과 이 영화의 해석에 대한 열띈 토론을 했다. 한 시간이 훌쩍 흘렀더라. 이미 전화하기 전에도 둘 이서 한 시간을 토론 중이었다 더라. 확실히 이런 류의 영화를 놓고, 남성과 여성의 시선과 해석이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영화 속 여러 장치들을 해석해 내려고 머리를 쥐어 짜느라 한 번 보면 스크롤로 두 번, 세 번, 네 번 보게 되는 영화다. 한 번 보시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시도해 보시길! 원한다면 그 해석을 <독자와의 대화>나 <독자의 질문> 형식으로 메일링 하셔도 좋습니다. (당분간은 영화 리뷰 칼럼을 꾸준히 써서 업로드할 예정이니 여러 씨네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P.S. 조만간 영어로도 올리겠습니다. 오늘 몰아서 쓰려고 했는데 너무 긴 하루였네요...:) 다들 설 연휴 잘 보내세요~!


           


February 10, 2021 (1:00am)

양혜린 Hyerin Yang 

melodiehyerinyang@gmail.com 


영화감상
https://bit.ly/3a6BC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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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cinehub 02.10 05:37  
리뷰 잘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아 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