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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REVIEW

<시간 에이전트> 가까이 그리고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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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형제로부터 비롯한 초기 영화는 외부의 세계를 가감 없이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감탄과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영화는 예상치 못한 관객의 큰 호응을 업고 더 먼 곳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사람들 눈앞에 황홀한 신세계를 펼쳐주었다. 급기야 영화는 공간을 넘어 시간의 영역까지 침범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SF영화도 진지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자본의 생산/소비 논리를 더 따라가게 되었다. 영화 탄생 이후 12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현실을 압도하는 테크놀로지에 감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 가까운 환상과 실제 현실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공허함 또한 커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SF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길을 개척하거나 충분한 물량이 뒷받침 된 거대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다.

<시간 에이전트>는 단편영화로는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SF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물량으로 승부를 거는 메이저 SF영화와 애당초 비교할 수 없는 영화다. 그러나 감독은 애당초 눈에 보여지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장르의 양적 확대가 아닌 연출자 본인의 철학/세계관이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한정된 시간의 제약 때문인지 내러티브에서 보여지는 사건은 퍼즐처럼 모호하게 처리되고 있다. 인과성을 일부러 배제한 듯 보이는 편집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미래에서 현재로 온 주인공의 활동이 여타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영웅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임무에 방해가 될 정도로 정에 끌리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여학생의 운명조차 끝내 막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감독이 품고 있던 주제 의식은 주인공과 여학생이 만나면서 서서히 드러난다. 그들이 우연히 만난서 보내는 시간 동안 -비록 일주일의 시간이지만, 약간 억지를 부린다면 성경에서 세상의 창조는 일주일에 걸쳐 완성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가 세상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 보여지는 소소한 일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별을 앞두고 깊은 슬픔의 옷을 입어간다. 이리하여 후반으로 갈수록 관객은 처음에 가졌던 낯선 거리감에서 벗어나 인물들에게 점차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이 영화는 오래된 고전적 내러티브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미래라는 거울을 통해 현대의 소외를 비판하고자 하는 감독의 주제의식은 낯섦과 친숙함이라는 양가성적인 시점으로 이동하게 된다.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고, 멀리 있지만 가까이 있는 것으로 현대 예술작품의 특성을 끄집어낸 발터 벤야민의 관점을 <시간 에이전트>로 가져오고픈 욕망을 느낀다. 예술을 삶으로. 그렇다면 개개인의 삶은 서로에게 멀리 있으면서 가까이 있다. 동시에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다. 감독은 주인공의 화면 밖 독백을 빌어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삶은 수많은 우연과 관계의 산물일 뿐이라고. 우연을 결정하는 요소조차 우연한 만남에서 기인한다. 이것을 주장으로 볼 수 없다면 감독은 어떤 특정한 세계관을 결코 나서서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본인이 느끼는 지금 이곳의 분위기만을 전달할 뿐이다. 사건 혹은 상황의 시작과 끝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난 더 부연하자면 연출에 있어서 발견할 수 미덕은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빛과 조명 그리고 상징적인 오브제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미장센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독립영화의 제작 여건이 힘든 상황에 비춰볼 때 또 하나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1 Comments
41 자막번역이근영 02.10 22:01  
예산이 적다는 것은 변명이고 한정된 예산에서 미쟝센을 구현해 내는게 또 다른 예술의 경지라는 생각이 드네요.